나의 생각
우선 오랜만의 소설이라 반가웠고, 소설임에도 짧게 짧게 분리되어 있어 읽기 부담 없었다. 그동안 흔하게 읽어왔고 기대했던 ‘발단-전개-위기-결말’의 구조가 아닌, 잔잔하고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부쩍 유행하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본 느낌이 든다. 막장드라마처럼 특별하게 긴장되고 흡입되는 스토리는 없지만, ‘응답하라 1988’이나 ‘슬기로운 의사생활', ‘멜로가 체질'처럼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등장인물이 다양하게 나와 초반에는 기억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전반적으로 시니컬한 듯 섬세한 문체도, 현재와 과거 시점을 왔다 갔다 하는 장면 전환도, 읽기 좋았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 주요 인물로 나와 반갑고도 재미있었다. 이런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특히 시각과 시점의 차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책이다. 같은 상황, 같은 인물에 대해서 모두가 다르게 기억한다. 그리고 본인과 제 3자의 시점 또한 당연하게도 다른 것이다. 나와 누군가가 같은 상황을 겪었다고 해도, 내가 당사자고 그 누군가가 제삼자로 있었다면 그 장면은 서로 다르게 기억된다. 모두가 나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고, 나 또한 누구의 상황도 완벽하게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항상 나를 두드리는 질문이다.
책을 읽고 등장인물에 나를 투영해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완전히 나와 비슷한 사람도, 완전히 나와 다른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의 다양한 면이 내 안에 공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비슷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주된 화자인 ‘김유경'인 것 같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굳이 그것을 티 내지 않고 사회 속에 그저 적응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사실 요즘에는 조금 달라졌다. 그래서 나에게 꼭 맞는 등장인물은 못 찾은 것 같다. 요즘에는 그래도 나만의 주장이 생기고, 그 주장을 어필할 때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굳이 말을 하지 않는' 때는 동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를 할 수 있을 때, ‘굳이 말할 때'는 용납하지 못할 때인 것 같다. 다른 생각을 어필하는 방식은 아직 더 많이 발전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오픈채팅을 통해 타인이 바라보는 나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말이 가득해서 살짝 감동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자기가 원하는걸 이룰 수 있는 조용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시끄럽게 파닥대지 않아도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 리더십이 보인다. 알수록 새로운 면모가 보이는 양파 같은 느낌이다. (알수록 새로운 면모가 보임) 진지한 고민이 생겼을 때 그녀를 찾아가면 잘 들어줄 것 같다. 속이 찬 사람이다.”라는 말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모순되는 두 가지 면모를 다 갖고 있기도, 때에 따라 다른 성격을 보이기도 하는 애매모호한 사람이다. 성실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정말 게으르게 꼼수를 부리고, 밝은 듯하지만 어둡고 우울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의 나를 상상해보면 대부분은 말이 없이 조용하게 있는 것 같은데, 또 생각해 보면 결정을 짓는 부분에서 나의 의견이 어필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도 나를 이 정도로밖에 파악하지 못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타자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았다.
추천도
10점 만점에 7점이다. 몰랐던 당시 시대상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모두가 한번쯤 겪을 법한 일들에 주변에 흔한 캐릭터의 인물들까지, 누구나 공감하고 이입하기 쉬운 책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서평에 적었듯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시사점도 있어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긴장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책이다.
토론 주제
Q. 자기자신과 타인이 바라보는 나는 얼마나 다를까. 오픈채팅으로 멤버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Q.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영해 보자. 가장 유사한 인물은 누구이며,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인가.
기억에 남는 구절
그와 함께 걸었던 모퉁이들의 햇살과 나무 그림자와 흘러가는 구름의 움직임을 알았다. 그와 나눠 마시던 평범한 커피의 향기와 찻잔의 온도와 손잡이가 놓여 있던 각도, 입술에 닿던 얇거나 두툼한 감촉을 기억했다.~그리고 나와 눈을 맞추었을 때 마치 뭔가를 건네받기라도 한 듯 한순간 내게 밀려들던 뜨거움과 갈증도.
40년 전에 처음 와본 강남과 20년 전부터 살고 있는 신도시의 연륜이 언젠가는 비슷하게 기억될 것이다. 그 정도의 시간은 더 큰 단위의 시간 속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시간이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곁을 스쳐 가며 갖가지 슬픔과 기쁨의 무늬를 새기지만 결국은 모두를 소멸로 이끄니까.
“진실이 어디 있어. 각자의 기억은 그 사람의 사적인 문학이란 말 못 들어봤니?”그녀는 그 문장을 쓴 영국 작가의 책에서 한 줄을 더 인용했다.
“우리가 아는 자신의 삶은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
~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고 우리에게 유성우의 밤은 같은 풍경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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